자신의 스승인 정여립을 죽이고, 연인인 기생 백지(한지혜 분)에게서도 떠나고, 자신의 정치적 무예적 맞수인 황처사(황정민 분)의 저지도 뿌리친 대동계의 새 수장 이몽학(차승원 분)이 조선의 왕궁에 도착했다. '왜'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는, 동인과 서인으로 패를 갈라 '적대적 공존'을 하는 썪은 관료들과 이 관료들의 썩은 싸움을 관망하며 통치 기반으로만 사용하는 비겁한 왕 선조를 몰아내야 한다는 이몽학의 주장은 정세상 옳았다.
그래서 이몽학을 필두로 한 대동계원들은, 남부 지방의 백성들이 왜놈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권력의 장소인 왕궁에 간 것이다. 그들은 왕국-권력 장소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다. 아니 그 무엇도 없다.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떠나는 왕이 어디있느냐. 왕궁을 지켜야 한다.'는 신하들의 만류를 비웃으며 동/서인 수장들과 함께 도망간다. 빈 왕궁에는 '반역자들이 도착했으니 우리와 맞서 싸워.'라고 말하는 대동계 간부의 듣는 이 없는 빈 고성만이 떠돈다. 그리고 곧 총포를 앞세운 왜군들이 도착하고, 총포를 지푸라기 방패로 막는 용맹함을 보이는 대동계원들은 힘 한 번 제대로 못쓰고 죽는다.
'권력을 쟁취하고 적을 섬멸한다.'는 이몽학의 필승 전략은 '권력은 없어지고 아(군)은 섬멸되는' 필패의 결과를 낳는다. 이몽학이 백지의 품에서 죽으면 한 대사는 결국 '꿈을 이루려 한 이몽학이 자신의 꿈 속에서만 허우적되는 몽상가'일 뿐이었음을 말해준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몽상가 만이 죽는 것은 아니다. 현실주의 혁명가인 정여립은 영화 처음에 죽고, 대동계 조직 내 세를 만드는 데에는 관심 없고 오직 친구인 정여립을 죽인 이몽학을 죽이면 대동계의 폭주를 막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 황처사도 죽는다. 꿈 없는 '개새끼'인 견자(백성현 분)도 죽으며, 현실에서 멀어지는 연인을 꿈 속에서만 잡아두려하는 백지도 죽는다.
이 허무주의적 죽음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는 무엇하나 똑부러지게 답하지 않는다. 삶의 중요한 통찰을 보여주는 명대사들과 그것을 표현한 명연기들은 영화 종국에서 무엇하나 형상화하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다. 황처사는, 견자의 발걸음이 어지러운 것이 백지에 대한 애정과 아비에 대한 복수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견자의 마음이라며, 둘 중 하나를 정리하라고 말한다. 이 영화의 구성도 견자의 발걸음처럼 어지럽기만 하다. 아쉽게도 말이다.